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막지 않을까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달러는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다. 달러 패권은 이제 은행이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코인이 아니다. 미래 금융 인프라의 주도권이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금융 질서의 사용자가 될지 플랫폼이 될지 선택하는 중.
미국은 왜 스테이블코인을 막지 않을까

Make Stablecoins Great Again!
당신이 모르는 사이, 달러는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다. 달러 패권은 이제 은행이 아니라 블록체인 위에서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코인이 아니다. 미래 금융 인프라의 주도권이다. 한국은 지금, 새로운 금융 질서의 사용자가 될지 플랫폼이 될지 선택하는 중.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왜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완전히 막지 않았을까? 오히려 미국은 이를 제도권 안으로 적극적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스테이블코인이 결국 ‘디지털 달러의 확장기’이자 ‘미국 국채의 새로운 큰손’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양의 실제 달러를 보유해야 하는데, 이들은 이 돈으로 대부분 미국 국채를 사들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쓰면 쓸수록, 앉아서 자국의 국채를 사줄 든든한 매수자가 늘어나는 셈이다. 결국 개인이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하는 행위는 실질적으로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낸다. 실제로 주요 발행사들의 국채 보유량은 이미 웬만한 국가 수준을 넘어섰으며, 대표적 발행사인 테더의 경우 한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을 상회할 만큼 거대한 ‘큰 손’이 되었다.
또한, 인터넷 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통화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된다면, 달러 패권은 온라인 세상에서도 공고하게 유지된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미국 은행 계좌 하나 없이도 스마트폰만으로 달러를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무작정 금지하기보다, 규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국채 수요를 확보하고 달러의 영향력을 인터넷 전체로 확장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각국도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국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전 세계 금융 허브들은 이미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코인 산업’이 아니라 미래 금융 인프라로 보기 시작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곳 중 하나는 싱가포르다.
싱가포르는 일찍부터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안으로 편입했고,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자국 통화 기반 코인만 허용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싱가포르는 땅과 인구가 작아 자국 화폐(싱가포르 달러)만 고집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까지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세계 스테이블코인 기업들이 싱가포르 규제 아래에서 사업하도록 만드는 것’ 자체를 국가 전략으로 삼았다. 즉, 자국 화폐의 규모 한계를 인정하는 대신, 전 세계의 자본과 인력이 모여드는 ‘가장 안전하고 매력적인 규제 관할권’이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홍콩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로 스테이블코인 법안(2025년 8월 ‘Stablecoins Ordinance’)을 만들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특히 싱가포르가 SGD와 G10 통화에 한정한 반면, 홍콩은 특정 통화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달러·홍콩달러·유로 등 다양한 법정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는 개방형 전략을 택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홍콩을 디지털 자산 금융 허브로 유지하려는 전략에 가깝다. 중국 본토에서 직접 하기 어려운 사업들을 홍콩에서 흡수하려는 움직임도 함께 보인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가장 먼저 착수한 국가로, 이를 새로운 금융 혁신이 아닌 ‘기존 금융 시스템의 연장선’으로 접근했다. 싱가포르가 핀테크 스타트업이든 글로벌 사업자든 MPI 라이센스를 받으면 발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글로벌 사업자에게 문을 열어둔 반면, 일본은 발행 자격을 이미 금융청(FSA)의 감독을 받고 있는 은행, 신탁회사, 등록 자금이체업자로 엄격히 제한했다. 이미 자본 요건과 내부통제가 검증된 기존 금융기관에 발행을 맡김으로써 규제 비용과 리스크를 최소화한 것이다. 이는 기술을 무조건 막기보다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게 통제하며 엔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실험하겠다는 일본의 의도적인 전략이다.
중국은 완전히 다른 길을 택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전면 금지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수록 자본 통제와 통화 주권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은 민간이 아닌 국가 중심의 디지털 위안화(CBDC)를 통해 통제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즉, 같은 기술 흐름을 보면서도 국가마다 완전히 다른 전략을 선택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각국은 지금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미래 인터넷 금융 시대에서 우리 통화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한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 아직 조심스러운 관망 속, 폭발을 준비하는 전야
한국은 아시아 주요 시장 가운데 아직 스테이블코인 전용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따라서 2026년 5월 현재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은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아직 없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자금세탁과 외환 통제, 통화정책 약화 같은 리스크를 우려하며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대규모로 확산될 경우, 국가의 통화 통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은 가장 민감한 쟁점 중 하나다.
하지만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는 사이 한국의 자본과 사용자들은 이미 해외 플랫폼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금 유출을 넘어 미래 금융의 주도권이 해외로 넘어가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실제로 2025년 한 해 동안 약 160조 원에 달하는 국내 가상자산이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제도와 금융 인프라가 글로벌 흐름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는 사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해외 거래소와 글로벌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돈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 유동성, 결제 인프라, 데이터, 금융 네트워크의 영향력까지 함께 해외 기업들이 가져가고 있다. 결국 한국의 자본은 계속 움직이고 있지만, 그 돈이 흐르는 길과 시스템은 한국이 아니라 해외가 만들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가장 큰 손실은 단순한 자금 유출이 아니라, 미래 금융 인프라의 주도권 자체를 놓치고 있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제도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는데도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바깥에서는 글로벌 디파이에 원화 유동성을 공급하는 ‘KRWQ’와 우리은행 에스크로 계좌를 활용해 개념검증(PoC)을 마친 ‘KRW1’ 등이 이미 기술적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으며, 규제 안쪽에서는 대형 기업들이 법안 통과 즉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타이밍을 재고 있다.
결국 지금 한국 시장은 “법이 열리는 순간 한 번에 폭발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실제로 국회와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일본처럼 은행 중심의 보수적 모델로 갈 것인지, 아니면 핀테크와 민간 기업까지 참여하는 개방형 구조로 갈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발행 주체 범위를 포함한 핵심 내용들은 현재 논의 중인 2단계 세부 법안을 통해 정리될 예정이며, 관련 제도 방향은 2026년 말쯤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요한 건 통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이다.
개인적으로는 금융위원회 입장처럼 보다 개방적인 방향이 장기적으로 한국에 더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금융 안정성과 통제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인터넷 기반 금융 시장은 결국 서비스 경쟁력과 사용자 경험이 시장을 결정하게 된다. 지나치게 은행 중심으로만 제한할 경우 안정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혁신 속도와 글로벌 경쟁력은 오히려 뒤처질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핀테크와 민간 기업까지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결제·송금·자산운용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서비스 경쟁이 가능해지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디지털 금융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도 커진다. 결국 중요한 건 단순히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데 있는 게 아니다. 더 본질적인 목표는 원화 자체를 인터넷 위에서 더 매력적인 통화로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편하고, 가장 많이 쓰이고, 가장 연결성이 좋기 때문이다. 결국 돈은 더 편리하고 유동성이 풍부한 네트워크로 흐른다. 그렇다면 한국 역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여러 서비스 안에서 실제로 사용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국내 거래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거래 페어로 적극 활용한다면, 해외 사용자들도 복잡한 절차 없이 한국 거래소와 서비스로 훨씬 쉽게 유입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한국이 위와 같이 경쟁력 있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단순히 국내 사용자를 지키는 수준을 넘어 해외 자본과 글로벌 사용자들이 한국의 금융 서비스와 원화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오는 구조도 가능해질 수 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의 핵심은 단순한 디지털 화폐 발행이 아니라, 인터넷 시대에 어떤 통화와 어떤 금융 네트워크가 선택받게 될 것인가의 문제에 더 가깝다.
메타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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