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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하여

20260517

Jake Lee in visiodeibc · 2026-05-16 22:05 · 0 claps · 8.4 min read paywalled
#date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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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대하여

20260517

친구들과 같이 살적, 이웃이 싸우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던 우리들

친구들과 같이 살적, 이웃이 싸우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던 우리들

공간이란 한자로 적으면 [空間]으로서 비어있는 사이라고 해석된다. 즉 물질들 사이에 있는 비어있는 것, 혹은 부재[不在]함 정도가 될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공간의 개념을 처음 인지한 것은 아마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 때, 멀리 미국에서 공부하던 누나가 건축을 공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공간을 설계하는 공부를 한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과연 어떤 뜻이고 무슨 의미인지는 그때도 어렴풋했고 지금조차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공간은 보통 채워져 있는 것들 사이로 이루어져 있다. 채워져 있는 것들은 국가와 도시일 수도 있고, 산과 강일 수도 있으며, 집과 뜰, 사람과 사람, 문화와 온도이기도 하다. 다름들 사이에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은 다름을 직시하게 해주기도 한다. 주로 공간에 어떤 것들을 채울 것인가, 혹은 채워져 있는 것들을 어떻게 비울 것인가라는 질문이 주를 이루는 것 같은데, 이미 채워져 있는 것들이 그 주변 공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가는 것 같다. 이런 과정 가운데, 어렴풋이 내가 인지한 공간과 또 그 사이를 기록해보고자 한다.

삶의 공간

지금 나는 7번째 국가, 12번째 도시에 살고 있다.

  • 국가로 치면 한국, 중국, 캐나다, 미국,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네덜란드이고
  • 도시로 치면 김포, 서울, 양주, 북경, 상해, 심천, 밴쿠버, 필라델피아, 시애틀, 싱가포르, 자카르타, 암스테르담이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단순히 시차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언어가 달라지고, 문화가 상이하며, 보통이라 여겨지는 기준들 또한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늘 묻기 마련이다.

“제일 좋았던 곳이 어느 나라냐, 어느 도시냐?”

이전의 나는 딱히 없다고 생각했었다. 누구와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어느 나라에 있든 어느 언어를 쓰는지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문화와 언어, 또 그 공간을 초월하여 인지하는 경지에 있다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그냥 둔했던 것 같다.

내가 있는 곳과 나의 상호작용, 무엇에 혹은 어떤 것에 내가 영향을 받는지, 무엇에 예민하고 무엇을 즐기는지 등을 경험적으로 살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깨달음을 처음 크게 느낀 것은 28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였다. 북경 올림픽 이전 중국에 살았던 나로서는, 싱가포르에서 소속되어 있던 회사가 모두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시키는 과정 가운데서도 당연히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그저 또 한 번의 새로움이자 도전이라고 여겼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에 익숙했기에 받아들였고, 심지어 설레기까지 했었다. Oh boy, I was wrong.

자카르타 내 방에서 보였던 도시의 모습

자카르타 내 방에서 보였던 도시의 모습

새로운 도시, 극한의 근무 환경, 또 새로 만들어야 하는 친구들 가운데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도시라는 공간 그 자체였다. 당시 자카르타의 삶은 나에게 감옥처럼 느껴졌었다. 교통 체증, 대기 오염, 인구 증가에 맞추어 만들어지지 못한 도시 인프라. 이 세 박자가 합쳐져 자카르타에서는 마음 편히 하늘을 보며 길거리를 걸어 다니지 못했다. 주로 인도가 없거나, 있어도 위험하거나, 공기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집과 회사, 사회 활동들은 대부분 그랩이나 고젝[현지 택시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졌다. 네모난 방에서 일어나 네모난 차를 타고 네모난 사무실에 가서 일한 후, 네모난 음식점에 가 밥을 먹고 사람들을 만났다. 너무도 그 네모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갈 곳이 없었다.

이 상황의 정점을 인식한 것은 저녁 시간대에 자카르타 한복판의 GBK라고 하는 운동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친구가 러닝을 하자고 해서 가본 곳은 도시 한복판에 있는 우리나라 상암운동장 같은 공간이었는데, 저녁 시간이 되니 퇴근한 자카르타 주민 수백, 혹은 수천 명이 그 주변을 뱅글뱅글 돌며 뛰고 있었다. 큰 빵덩이 주위를 애워싼 개미 떼처럼, 마음 편히 뛸 곳을 찾기 힘든 자카르타 주민들은 유일하게 주어진 그 공간에 나와 러닝 마일리지를 채우고 있었다.

공간만을 탓하기에는 과할 수 있겠지만, 당시 회사를 퇴사하고 다시 싱가포르로 이사를 가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하늘을 보고 마음 편히 걷고 뛸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나는 사는 도시가 주는 매력과 아쉬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서히 깨달았다.

관련되어 Pual Graham 의 Cities and Ambition도 재미있게 읽어볼만하다. 그 후로 조금씩 나와 내가 사는 도시가 나에게 주는 기분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바라기로는

  • 밖을 마음 편히 뛰고 걸을 수 있을 것
  • 보편적인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은 곳
  • 푸름을 볼 수 있는 곳
  • 동네 혹은 상점마다 개성과 이야기가 많은 곳
  • 대중교통이 상대적으로 좋은 곳
  • 가족들과 너무 멀지 않은 곳
  • 한국음식이 비교적 맛있는 곳

등등 고민하다 보면 끝이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도시 또한 없다. 다만 나는 도시라는 공간의 중요함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기고 대하는 태도로, 지금 암스테르담이라는 도시와 서로를 알아가고 있다.

나만의 공간

내가 자고, 먹고, 뒹굴거리고, 또 쉬는 나만의 공간.

학생 혹은 사회 초년생일 적에는 사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것 같다. 나만의 공간을 채울수록 더 자유롭지 못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거의 매년 짐을 싸서 나라를 옮기거나, 도시를 옮기거나, 학교를 옮기거나, 군대를 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가벼운 삶의 방식, 무거운 물건을 피하는 태도, 물건과 특정 공간에 정을 붙이지 않는 태도가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사할 때 팔거나 옮기기 힘든 것들은 말 그대로 몸과 마음의 짐이 되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삶에 임하다 보면 정말 자유로운 동시에, 불안정함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의 일상이 언제 바뀔지 항시 머리 한편에 접어두고 살아가야 한다.

그와 동시에 독립 이후 나만의 공간은 경제적, 또 성취적 확장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 임대료가 높기로 손꼽히는 싱가포르와 암스테르담에 살면서, 나만의 공간이 얼마나 있는지는 상대적으로 내가 얼마나 성취하고 있는지를 반증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공간의 확장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즐거움 또한 같이 확장되는 레벨업 같은 느낌이 있다.

나의 첫 싱가포르 방[좌], 친구들과 같이 렌트한 집에서의 나의 방[우]

나의 첫 싱가포르 방[좌], 친구들과 같이 렌트한 집에서의 나의 방[우]

싱가포르에 처음 갔을 적에는 정말 짐가방 하나 들고 내 몸 하나 누울 수 있는 곳에 들어갔다. 친구를 초대하는 것은 상상해본 적도 없었고, 옆방에서 TV를 틀면 벽을 통해 나도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간을 꾸민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고, 그저 나 혼자 온전히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첫 집 이후에는 친구들과 방 세 개짜리 집을 같이 렌트해 살기 시작했다. 거실에서 편히 누워 뒹굴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짜릿하던지, 또 다른 친구들을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는 즐거움이 얼마나 새롭던지, 또 아침에 거실에서 커피를 내려 나누어 마시며 나만의 방과 화장실을 가지게 되었던 경험 또한 새롭고 즐거웠다.

주말만 되면 친구들을 불러 저 좁은 거실에서 같이 포카치아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주말만 되면 친구들을 불러 저 좁은 거실에서 같이 포카치아를 먹고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암스테르담에 와서는 처음에는 스튜디오에 살았고, 지금은 원 베드룸 집을 사게 되었다. 처음으로 온전히 나만의 부엌, 화장실, 침실, 그리고 거실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아직도 평생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꾸밀지, 어떤 것들을 들일지, 또 누구를 초대하여 같이 이 공간을 누릴지 등 새로운 즐거운 고민들과 이야기들이 생기게 된다.

지금 암스테르담 집

지금 암스테르담 집

지금 나의 공간에는 아침에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핑크색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고, 그 뒤로는 내가 마셔본 커피 빈 백들로 만든 조잡하지만 아티스틱한 콜라주와 싱가포르에 살았던 티옹바루 건물들을 모티브로 한 포스터가 있다. 또한 사랑하고 따뜻한 사람들과 순간들을 담은 사진들이 나름 대칭과 비대칭 사이의 줄타기를 하며 벽에 걸려 있고, 고민과 결단, 또 기도의 노력들을 담은 포스트잇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반대편 벽에는 아침 스트레칭에 필요한 요가 매트와 내가 애정하는 책상 램프, 그리고 야망을 품고 한국에서 사 온 책 무더기가 쌓여 있다.

내가 조립한 침대, Andras를 통해 할인받아 산 책처럼 생긴 나의 스피커,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서 사 온 빈티지스러운 램프들 등등이 모여 나의 집이 되었다. 또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집에 모여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즐겼으며, 웃음과 함께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흘러갔다. 이번 집과 함께 바랐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누려지는 공간이었는데, 정말로 그 사랑이 풍성하다.

시작할 적에는 관념적 공간이라는 문단도 기획했었지만, 너무 글의 방향을 잃을까 두려워 이쯤에서 단락지으려 한다.

재미있다. 외적으로 나를 제한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일 것 같은데, 제한은 반대 의미로 누림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경험한 공간의 확장과 삶의 성장이 없었다면, 그 중간중간 레벨업하듯 겪었던 과정들과 새로운 즐거움들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 또한, 내가 시간과 공간을 인지하고 누린 시점과 태도의 변화처럼 계속 확장되고 다져지며 성숙하리라 믿고 또 바란다. 어렸을 적 어렴풋이 들었던 여백의 미[美]라는 개념이 얼마나 깊은지 살다 보니 점점 깨달아진다. 무엇을 채우는지보다 무엇을 비우느냐에 따라 더 풍성한 공간은 만들어진다. 그리고 비우고 비우다 남은 것들이 무엇인지가 결국 나의 공간을 정의한다. 나중에 이 글을 돌아볼 적에, 나의 공간에는 무엇이 남아 있고 무엇이 비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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